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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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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성지순례

  • 최영준
  • 조회 : 1412
  • 2018.02.04 오후 11:07

124일 출발 .....

오전 930분 교회 인근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인천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점심을 먹은 후 13:30분에 비행기에 몸을 싫었다. 14:15분에 출발한다던 비행기는 중국의 항송 통과 허가가 늦어 30분 지연된 14:45분경 출발했다. 이스탄블 공항까지 13시간에 달하는 긴 비행시간을 좁은 좌석에 앉아서 가는 것은 정말 지루했다. 영화도 보고, 성경도 보고, 암송도 하면서 긴 시간동안 지루함을 달랬다.

비행기 지연 출발로 이스탄블에 늦게 도착한 우리는 짐을 찾을 새도 없이 카이셰르 공항으로 가는 예약된 비행기를 타기위해 뛰어야만 했다. 짐은 현지 가이드가 다음 비행기를 통하여 숙소로 가져온다고 했다.

1시간 30분정도 지나 카이셰르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또다시 1시간 10분정도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이스탄블 공항에서 우리가 탄 다음 비행기가 눈이 많이 온 관계로 뜨지 않아 짐은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가져와서 성지 순례중에 만나서 받기로 하였다. 정말 눈이 많이와서 온 세상이 하얗다.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어찌보면 숙소로 오지 못하고 공항 에서 밤샐 뻔한 일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호텔에서 잘 수 있게 하여 주심에 감사드린다.

   

125일 순례 1일차(터키)

피곤이 덜 풀린 채로 오전 530분에 기상하여 630분부터 아침을 먹고 8시에 첫날의 성지들을 순례하고자 버스에 몸을 싫었다.

제일 먼저 파샤바에 들러 버섯 모양의 바위를 보고 사진들을 찍었다.

이제 8일간의 순례가 시작되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설레이기만 했다.

파샤바를 떠나 괴레메 동굴에 도착했다. 바위 동굴을 집터로 사용하여 수도원으로 사용하였으며, 남자수도사와 여자수도사가 사용하는 집터가 구분되어 있고, 차이점은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에 자물쇠가 있는 것은 여자수도사의 집터고, 자물쇠가 없는 것이 남자수도사의 집터란다. 동굴벽에는 벽화가 있는데 프레스코 벽화(습식으로 젖은 석고에 그림색을 넣어 기존 석고에 붙이면 굳어가면서 기존 석고와 하나로 합쳐져서 굳어진 벽화로 천년이상 그대로 보존되고 있음)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사를 접고 수도하러 왔는데 남자 수도사들의 관심을 받게되어 본인의 수도에 방해를 받게 되자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더니 어느날 얼굴에 수염이 나고 할아버지처럼 쭈글쭈글해져 몸매는 아름다운 여인이나 얼굴을 보고서는 남자수도사들이 기겁을 하여 이 여인이 수도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고 성인이 되었다는 벽화도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교회로 사용한 장소도 몇 곳 둘러 보았는데 그 중에는 무덤을 안치한 무덤교회도 있었다. 수도사들은 7~8km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왔다.

비둘기 골짜기도 있는데 이는 비둘기똥이 최상의 비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비둘기를 유인하기 위하여 비둘기집을 지어놓고 주변에 좋아하는 빨간색 물감을 칠하였다.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습성을 이용하게 하는 지혜를 주신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날씨로 인하여 열기구를 타지 못하고 대신 사파리 투어(90유로)를 경험했다.

짚차에 4인의 관광객을 태우고 운전자가 1시간 30분동안 갑바도기아 구석구석의 유적지를 가까이까지 가서 감상하게 해주는 것이다.

짚차의 운전자가 열기구의 운전자란다. 눈길을 달리면서 유적의 절경을 가까이서 보는 재미를 주며, 중요한 유적지는 차를 세우고서 보여준다.(팁은 필수) 열기구가 뜨지 못하는 것을 대비하여 한 3~4년 전부터 생긴 프로그램이란다. 열기구를 못타는 우리를 위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괴레메 동굴 지역을 벗어나 대린구유 최대규모의 지하도시를 순례하러 이동했다. 2만명을 수용하는 지하도시로 환기통을 통한 환기가 잘 되어 지하로 끝도 없이 내려가는데도 공기가 답답하지 않았다. 통로가 좁아 로마군인이 빨리 좇아오지 못하게 하였고, 응급할 때는 맷돌모양의 돌로 통로를 막아 변형을 줌으로써 길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교회는 십자가 모양의 동굴이고, 집 뿐만아니라 학교와, 광장, 무덤이 있고, 햋빚을 볼 수 있는 장소도 있었다.

정말 바깥 도시에 빠지지 않을 만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 가이드이신 조신호 목사님께서 이렇게 동굴을 판 석회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박해 시대에 믿음의 선조들을 지혜로이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일차 저녁을 마무리하고 은혜가 넘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잠자리에 든다.

   

126일 순례 2일차(터키)

아침을 먹고 730분 호텔을 나와 이고니온(꼬냐)로 가면서 버스 안에서 조신호 목사님께서 지루하지 말라고 성경인물 일대기를 이야기 해 주신다.

바울의 이야기, 오네시모 이야기 등 인물의 발자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들으며 감사한 은혜가 넘친다. 바울기념 교회도 설명으로 하시고 직접 라오디게아 교회로 가신다고 하셨다. 점심을 먹고도 조금 더 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정말 큰 건물 형태를 본다 원형경기장이 있고, 원형극장도 있다.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파묵칼레)는 일정 거리를 두고 삼각형을 이룬다. 골로새 교회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 교회를 세웠다고 하셨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었서, 대지진때 황제가 복구를 지원해 준다고 하였음에도 간섭받기 싫어 자신들이 복구 하였으며,

골로새의 강물을 끌어오고,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끌어오는 시설도 하였으나, 골로새의 찬물은 라오디게아로 오면서 미지근해지고,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도 라오디게아까지 오면서 미지근해 졌다고 한다. 그대로 놔두고 본인들이 이동하여 사용하면 될 것을...

차든지 덥든지 처음의 믿음이 변하지 않아야 함을 조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라오디게아에 세워진 신전에는 놀이판도 있고, 우물, 체육관, 수영장도 있다. 잡신을 쫓기 위해 문에 메두사의 머리문양을 사용했으며 지금도 복원하고 있다는데 유적이 발굴되면 짜 맞추어서 완성한단다.

히에라볼리 유적지에는 원형경기장이 있고, 장례전용 예배장소가 있으며,

목화의 밭이라는 하얀 석회질층과 온천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하얀 석회질층을 보면서 정말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온천수는 우리가 묵는 호텔에도 끌어와서 무료 이용하게 하였는데 입장하려면 수영복이 필수다. 이용해 보니 물이 정말 미지근 했다.

이 물을 라오디게아로 끌고 갔으니 찬물이 되었겠다 싶었다.

어제와 같이 하루를 마무리 하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을 위해.

 

127일 순례 3일차(터키)

오늘은 갈 곳이 많아 630분에 호텔을 체크아웃 하고 버스가 출발했다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터로 향했다. 가면서 조목사님께서 들려주신 형제의 우애가 철저했던 왕국 이야기, 왕인 형에 대한 동생의 흔들리지 않은 충성심과 믿음이 지금의 빌라델비아가 존재하게 된 이유이며, 동생이 형을 제치고 왕이 되려 했다면 빌라델비아는 없었다고 하셨다. 지명의 의미가 권력을 가졌음에도 나눌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이 있는 자리 그 이상을 탐하여 배신하지 않는 자세는 본 받아야 할 것이다. 나눔을 실현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둘러보고 사데교회로 향했다. 사데에는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이들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적당히 보물을 쌓아두려 했다. 양다리를 걸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데교인들은 열심히 없으므로 굳이 박해를 하지 않았단다. 일곱교회를 보며,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고난이 유익음을 알고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함을 느꼈다.

사데는 지진의 영향으로 산이 허물어짐이 있었고, 유적으로 체육관, 유대인 회당등을 보았으며 아르테미스 신전과 그 옆에 사데 교회를 보았다.

점식 식당으로 가면서 버스안 조목사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정말 쉴새 없이 이야기 하신다. 조용히 버스타고 가면서 암송좀 하려 했는데... 그러나 암송은 천천히 시간내서 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성지순례 집중해야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요한의 이야기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라 불릴 정도로 욱! 하는 성격을 가졌다.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시 그 십자가 밑에까지 나아간 유일한 제자라고 하셨다.(졸면서 들어 여기까지... 그 후 점심시간)

가죽제품 판매소를 들른 후 에베소에 도착했다. 누가의 묘(누가의 유해는 없음)를 보고, 에베소 유적지에 도착하여 모형도를 보고, 아고라 광장, 원형극장, 바실 리 양식, 피자판(익수스-물고기 모양), 아데미 여신전을 보았다.

아데미 여신전 축제는 브라질의 삼바축제와 같은 성격으로 남편잃은 여인들이 참여하고, 여인들을 따라 남자들이 참여한다. 황소를 잡아 거세하고 신전에 드리며 축제동안 성적인 문란함으로 일주일을 보낸다. 이 기간동안 기독교인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디모데가 이를 권면하다 순교당하였고, 오네시모가 디모데의 직분을 이어받았다.

큰 물탱크도 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신전, 맴피스 총독의 무덤도 있었다. 종려나무와 헤라클레스의 문도 있다.

AD450년경 바다가 토사로 막히게 됨에 따라 멸망하였다.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지키고자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트리안 황제의 연못, 두란노 서원 가는길 대리석 길(인도), 하이드리안 황제의 신전, 두란노 서원, 원형경기장을 살펴보고 사도요한 기념교회로 향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 유대인들이 제도화 한 것으로는 안식일에 2천보 이상 안 걷기,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 등이다. 성경은 믿는 순간 세례를 주는 것으로 기록되었다. 제도 속에 우리를 가두면 신앙의 뜨거움이 사라지며, 촛대가 옮겨지게 되고, 지역이 멸망하게 된다. 에베소 교회를 보며 상기하자.

사도요한 기념교회(사도요한 무덤교회)는 헌금을 강요하고 부패하여 회교에게 문을 열어주고 망해가는 길을 걷게 된다.

서머나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라는 질문에 서머나 교인들을 라고 대답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벌이 재산 몰수이며, 잡아가고 죽이기도 한다. 계시록에서 10일 동안 극심한 고난을 예언으로 받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줘도 서머나 교인들은 이길것이라고 믿어주시는 것(욥기의 예)에 근거한다고 하셨다. 얼마나 부러운 믿음인가!

정말 AD120년경에 고난이 왔다. 사도 바울이 죽은 후 사도요한의 젊은 제자 폴리갑이 나서서 서머나 교회로 갔다. 그는 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독일을 잘 수행했다. AD150년경에도 극심한 환란을 당하나 폴리갑은 교인들이 피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양들을 위해 순교의 길을 가려고 하였다.

로마총독이 폴리갑을 판결하는 날을 토요일인 안식일로 하여 유대인이 자신들이 정한 제도 때문에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화영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도를 무시하고 판결의 장소에 나왔으며, 화영준비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하였다.

악은 자기가 정한 법도 위반한다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모든 일이 10일 동안의 환란을 보여준 것으로 추측하며, 서머나 교회가 이 시험을 이기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낸다. 정말로 하나님이 믿으시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된 것이라고 조목사님께서 말씀 하셨다.

다음으로 간 곳은 버가모교회 세라피스신전터

황제숭배 사상이 아주 강하게 있었던 도시이며 참여하지 아니하는 기독교인들을 미워했고, 유대인들로 인하여 더 미워하게 되었던 지역이다.

오늘도 긴 여정을 마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잠자리에 든다.

   

128일 순례 4일차(터키)

<주일예배>

아침 6시예 예배를 드렸다.

장소 : 호텔지하, 찬송 : 305, 기도 : 김을규장로님, 찬양 : 김용숙사모님

성경 : 요한계시록 219, 말씀 : 조신호목사님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 : 처음 것보다 나중것이 더 많도다. 복음 전파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신뢰를 얻는 것이다. 신뢰를 받고 나중것이 더 많아지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찬송 : 359, 헌금 : 조신호목사님께 선교헌금으로 드렸다.

<순례의 길>

예배를 드린 후 식사하고 8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조목사님 이야기가 또 펼쳐진다. 두아디라 이야기.

두아디라가 커졌을 때 이방신을 섬기게 되며 이를 통해 몸을 팔던 이세벨이 기독교의 좋은 점에 빠져 기독교에 귀의한다. 방언을 하게됨에 따라 따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좋게 여김에 따라 교만해 지게 된다. 결국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함에 따라 이세벨의 말을 하나님의 말로 여겨지게 되었음에도 두아디라 교인들은 거부감 없이 따르게 되었다. 제대로 된 질서와 교육이 없었으므로 조금씩 악으로 잠식되었다고 하셨다. 이번 순교지에 두아디라는 가지 않았다.

드로아지방 트로이에 도착. 유적속에 보물이 있음에 따라 보물에 집착함으로

무분별하게 파해쳐 연대기별 유물 구분이 어렵게 만들었다고 하셨다.

트로이 목마 앞에서 찰칵. 배타고 간다. 델리블루 항에 도착. 이스탄블 가는 길에 차안에서 서로의 간증 시간을 가졌다. 우리 31명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이번 성지순례가 이루어진 것 같아 감사가 넘쳤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이 지역이 주변에 산이 없고, 물이 없어 3중 성벽으로 튼튼하게 지어졌으나, 4차 십자군 전쟁때와 오스만 제국이 들어왔을 때 두 번 무너졌다. 수로(수도교)를 만들어 지하궁전까지 물을 끌어 왔다고 하셨다.

고스프러스 해엽을 유람선 타고 돌아본다. 회교 사원들과 건물들이 아름답다.

<선교사님과 간담회>

숙소로 돌아와 몇 사람이 조신호 목사님과 간담회를 가졌다.

목사님은 아버님께서 제주도에서 목회를 하셨단다. 지금은 은퇴하셨다나...

터키에서 단기선교 등으로 오신 분들이 드러내놓고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다시 고국으로 가면 터키인들의 불만은 그 지역 선교사님들이 다 받는다고 하셨다. 우리는 회교가 국교로 선포되면 기독교가 들어가기가 더 어렵잖냐고 했더니 선교사님은 그 반대라고 하셨다. 회교가 국교로 되어 강력하게 정책을 펴 나가면 국민들이 그 제도에 질려 기독교로 관심을 보인다고 하셨다.

이란, 이집트 등에 복음이 점점 들어간다고 하셨다. 오히려 터키처럼 회교에 대하여 선택적으로 정책을 피면 자랄때무터 암묵적 회교화 되어 있는 국민들이 적극성을 가진 기독교를 보면 싫어한다고 하셨다. 대한민국이 자유로이 전도할 수 있는 것이 복이라고 하셨다. 많이 기도해야 겠다

저녁 10시경 우리는 각자 자기방으로 가서 내일의 순례를 위하여 잠을 청한다.

   

129일 순례 5일차(터키)

5시 기상하여 식사 후 7시에 버스에 올랐다. 슐탄아흐메(이스탄블 중심가)로 향했다. 출근 때에는 교통이 혼잡하여 일찍이 서둘렀다. 아직 상가들이 문을 열지 않은 관계로 먼저 문을 연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물코너에 들렀다.

선물코너를 나와 우리는 터키 전통가옥을 살폈다. 창문들이 튀어나온 집들이 많은데 그것은 밖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오벨리스크, 지금으로부터 1,600년 전에 데오도쉬우스황제가 이집트에서 옮겨온 돔이다. 3,500년전에 만들었음에도 맨 위 글자와 맨 밑의 글자가 같은 크기로 보이게끔 과학적으로 만들었다. 오벨리스크 주변으로 꽈배기 모양으로 머리가 잘려있는 청동이 있는데, 뱀 모양이며 머리위에는 황금트로피가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원형경기장의 반환점인 주석으로 된 물고기의 활동감 넘치는 모습이 그려진 주조물이 있었다.

블루모스크 회교 사원은 들어가는 문에 쇠사슬이 걸려 있는데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걸어들어가라는 의미란다. 공간이 딱 걸어들어가야 하는 사이즈다. 말을타거나 해서는 들어가지 못한다.

성소피아 성당과 높이를 같게 하려고 높이를 높였다. 회교 신전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며, 여자는 두건을 쓰고 들어가야 한다. 신전 안 기둥 네 개는 코끼리 다리 기둥이라 하며, 지름 6m 기둥이다. 중심 돔 천정에는 코란을 그렸다. 블루모스크 사원은 슐탄아흐멧 사원이라고도 하는데 온통 파란 대리석이 많아 블루모스크 사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가운데 움푹 파진 곳이 있는데 메아리로 소리가 멀리 퍼지게 한다. 기도는 엎드려서 하는데 서로 부딪히지 않게 카펫에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사우디 메카에 들러가려면 반드시 회교도 이어야 한다. 그래서 메디나 사원과 함께 회교도들이 가 보고싶은 선망의 장소이다. 여자는 남자와 같이 기도할 수 없다. 따로 마련되어 있다.

다음으로 그랜드바자르 순례다. 관광상품 판매 집합소로 분산되어 있던 상점들을 1461년 한 곳으로 가게를 만들어 분양해 주었다. 백화점과 아케이드의 조상이 된 곳이다. 1시간의 자유시간을 주었는데 정말 상점이 많았다. 미로같아서 잘못하면 들어간 곳으로 못 나올 수 있으니 들어간 지점, ( )번게이트를 알고가야 길을 잊었을 경우 상인들에게 이야기하면 안내해 준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성소피아 성당에 도착하였으나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백향목으로 지었으나, 방화로 소실되어 데오리소스왕때 기본 구조를 돌로 하고 내부에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다시 민란으로 무너지고 AD530년경에 수학적, 과학적 최첨단 건물인 지금의 모형으로 5년에 걸쳐 지어졌다. 당시에는 최고의 건축물이었으나 이후 더 크고 좋은 건물을 짓고자 하는 바램에 지금은 세계 4대 건축물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1.2.3대 건축물이 100여년 등 긴 기간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점을 볼 때 5년안에 지었다는 것은 획기적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되어 있어 종교시설로 사용할 수 없다.

점심을 한식집에서 먹었다. 꿀 맛이었다. 매밀 빵만보다가.....

톱까프 궁전을 보았다. 성이레네 성당이 있고 제2차 콘스탄틴 성의회가 열린곳이며, 삼위일체의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 곳이다

소피아 성당보다 오래되었으며 궁 안에 들어와 있어 회교 사원이 되었던 적이 없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발칸반도에 있는 젊은이들을 군대로 키워 싸우게 하여 지역을 점령하고 오스만 제국을 형성함. 황제의 저녁식사 장소인 골든혼, 황제의 가족들이 수영하던 수영장, 왕자들의 할례소, 황제의 친목의 방이 있다.

터키의 성지순례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가기 위하여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텔아비브에 도착하여 이현주(집사) 가이드와 만났다.

호텔로 이동하면서 간략한 설명을 듣는다.

이스라엘(하 엘 예츠).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지역이며 동 예루살렘 지역에 속한곳을 둘러보게 된다. 샬롬이 인사이지만 여기 말로는 살람이라고 한다. 예루(완성) 살렘(보다), 즉 완전함을 보다라는 의미로 평화를 희망하는 염원이 담겨있다.

예루살렘은 3대 유일신을 섬기는 중심지이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이다.

유대교(70%), 이슬람교(24%), 기독교(2%) 정도. 1달라는 3.3세겔 정도.

숙소에서 짐을 풀고 내일 아침 5시 기상을 위해 잠을 청한다.

 

130일 순례 6일차(이스라엘)

새벽 5시 기상하여 세면을 하고 아침을 먹기 전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순례의 시간을 가졌다.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의 순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심판받은 안토니아 탑을 1처로 하여 14처까지 직접 따라가 본다

   

1,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장소이다.

예수님당시에 로마 총독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며 유대인의 명절이 다가오면 유대인 남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혹시 민란이 나지 않을까 염려하여 예루살렘에 와서 파견 근무를 하였다. 당시 성전산 북쪽에는 헤롯 대왕이 자기 친구인 마가 안토니를 위해서 안토니아 성채를 지었었다. 이 안토니아 성채는 네 개의 높은 망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성전산에서 제사 드리는 유대인들을 감시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요새에는 로마 군병들이 거주하였으며 빌라도의 법정도 이 안토니아 요새에 있었을 것으로 주장되어 진다.

빌라도가 박석(The Stone Pavement, 아람어로 가바다)이라는 재판석에 앉아 재판을 하였다. 빌라도의 법정이 있었던 안토니아 성채의 거리에는 현재 아랍 초등학교인 알-오마리엘 학교가 있으며, 이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이슬람의 미네렛 탑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안토니아 탑이라고 불리 워 진다. 혹자는 빌라도의 법정이 현재의 욥바문 근처에 있었던 헤롯 궁궐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순례자들은 안토니아 성채부터 십자가의 길을 시작하며 매주 금요일 오후 3시가 되면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주관으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재현한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가신 장소이다.

현재 제2처 안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하나는 채찍질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선고 교회이다. 채찍질 교회는 가톨릭 성경학교 교정에 있으며, AD 1839년에 지어졌으며 AD 1929년에 십자군 시대의 건물로 바뀌었다. 제단 뒤쪽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모습이 있다.

선고 교회는 AD 1903-1904년에 비잔틴 시대의 건물로 재건되었으며 이곳에서부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기 시작한 장소이다.

선고 교회에서 서쪽으로 약간만 가면 에케 호모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시온 수녀원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안토니아 요새의 북쪽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라틴어로 에케 호모는 "보라 이사람이로다" 이라는 뜻이며 빌라도가 채찍질과 조롱을 받으시고 나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한 말이다. AD 135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안은 이곳에 세 개의 아치로 된 개선문을 만들었는데 중앙의 큰 아치는 일반도로위에 있고 작은 아치 하나는 에케 호모 교회 지하 예배당에 있다.

시온 수녀원 지하에는 AD 135년에 로마 하드리안 황제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큰 돌로 만든 포장 도로가 있으며 이 돌 위에는 로마 군병이 놀았던 왕의 놀이(왕으로 뽑힌 사람은 처형)’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 포장도로는 AD 135년경의 것이지만 하드리안 황제가 예루살렘을 알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이방 이름의 도시로 다시 만들면서 안토니아 성채의 큰 돌을 가져다가 이 광장을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예수님께서 입으신 자색 옷은 지중해의 뿔고등을 잡아서 천연 색깔을 내어 만드는데, 수십, 수백 마리를 잡아서 자색옷 하나를 만들므로 주로 왕이 입었다. 예수님이 왕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저급 재료를 사용한 것이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 처음으로 쓰러진 장소이다.

AD 1948년에 세워진 폴란드 예배당이 위치하고 있다. 정문 위에는 다데우스 지엘린스키가 조각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시는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장소이다.

AD 1881년에 지어진 아르메니아 가톨릭교회가 세워져 있다. 십자가의 길 3, 4, 5처는 치즈 골짜기(중앙 골짜기)를 지나가므로 14처 중 가장 낮은 부분에 속한다.

   

5,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장소이다.

AD 1895년에 지은 프란체스코 예배당이 위치한다. 사도 바울은 루포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말할 정도로 구레네(리비아) 시몬의 자녀들과 부인은 후대에 큰 축복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

6,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장소이다.

예수의 작은 수녀원에 속하며 AD 1895년 지어진 성 베로니카의 교회가 위치한다. 이 교회는 베로니카의 집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베로니카라고 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드렸는데 그 수건에는 예수의 얼굴 형상이 찍히었다는 전승이 전해 내려온다.

베로니카 여인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다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므로 고침 받은 여인이라고 한다.

   

7,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쓰러진 장소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장소부터 성 밖으로 나가는 심판의 문이 있었으며 이곳을 지나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할 장소인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시면서 걸어가셨을 것이다. AD 1875년에 가톨릭에서 구입한 건물에 예배당이 위치한다.

   

8, 예수께서 울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신 장소이다.

그리스 정교회에 속한 성 카라람보스 수도원의 벽위에 라틴 십자가로 표시되어 있다. 십자가 좌우에는 ‘NIKA'라고 쓰이어져 있는데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이시다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매우 힘들고 지친 상태이셨지만 울고 있는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해 주신 장소이다.

   

9,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쓰러진 장소이다.

로마 시대의 돌기둥 하나가 서 있으며 이것이 9처를 표시한다. 우측에는 이집트 정교회인 콥틱 교회가 있으며 이 교회의 지하에는 큰 지하 물 저장고가 위치한다. 온 몸이 피로 물드셨고 지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쓰러지신 장소이다.

   

10처부터 14처 까지는 성묘 교회 안에 위치한다

10, 예수님이 옷을 벗기운 곳이다.

1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다.

12,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곳이다.

13, 예수님의 주검을 받아 내린 곳이다.

14, 열 네 번째 처소는 예수님의 무덤이다. 예수님이 묻힌 곳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준비해 둔 무덤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미리 마련해 두었던 무덤을 예수님에게 내주었다

십자가의 길 순례를 마친 후 아침을 먹고 910분에 다시 순례의 길을 떠났다. 감람산 가장 높은 곳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예수님 승천당을 둘러보고 주기도문 교회에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던 동굴에 세운 교회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라는 의미로 감람산 베다니, 예루살렘 동편 베다니라고도 한다. 기둥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주랑(기둥), 회량(공간)이라고 표현한다.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된 주기도문을 비롯하여 각 나라의 언어로 된 주기도문이 있으며, 한글로 된 것도 두 종류나 있다. 우리는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모든 나라의 언어를 번역하여 읽을 수 있다. 아랍어와 히브리어로 된 주기도문 앞에서 우리 모두는 소리내어 읽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라는 아몬드 나무도 보았고, 수많은 무덤도 보았는데 봉분이 관 모양으로 되어 있고, 추모는 거기에 돌을 올려 놓는 것이란다. 황금사원인 오마르 사원도 보았는데 그 자리가 아담이 하나님께 가장 먼저 예배 드렸던 곳이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곳이고,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인 곳이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성전이 지어지고 또 무너질 것을 알았단다. 돌 하나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고 무술람 사원이 지어진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눈물 교회를 들렸다. 교회의 정문 위 지붕에 눈물 흘리는 모양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 교회들은 모두 정문을 동편으로 하는데 눈물교회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봐야 하므로 정문이 서편이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으로 표현하셨는데, 이는 무덤의 구분이 잘 안되어 해마다 예루살렘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무덤을 스치게 될까봐 회칠로 알아보기 쉽게 한 것을(부정하지 않게) 인용하신 것으로 본다. 가시나무를 보았는데 가시가 굵고 길어(우리나라의 2.5배정도) 내가 생각한 상상 이상의 고통이 느껴졌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고 있는 모형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품어 주신다는 의미이다. 쥐엄나무도 보고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길을 걸어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갔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다라는 의미이며, 2,000년 이상된 올리브 나무가 6그루나 있다. 고뇌의 기도를 드리던 곳에 교회 가 세워졌고 지금의 교회는 1900년경 세워진 것이다. 고뇌의 기도를 드린 바위에서 조금 떨어져 그루터(제자들이 졸던 장소)가 있다. 마리아 무덤교회와 성전꼭대기를보고 통곡의 벽에 도착했다. 2성전의 흔적으로 홈이 파진 벽돌이 있는 곳까지가 헤롯이 지은 것이며 그 위로는 여러시대의 손길이 거친 곳이다. 지성소의 자리가 어디인지 아직까지 모르므로 유대인은 잘못 밟을까봐 성벽에 올라가지 않는다. 유대인들이 귀밑머리를 둘둘 말아 기르는 것은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다는 의미란다. 황금으로 된 메노라(황금촛대)를 보고 점심시간을 가졌다.

점심 후 히스기야 터널을 체험했다. 좁은길을 물도 차있는데 40분 가량 가면서 정말 하나님께 함께 해 주시기를 기도할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 우리는 찬양하면서 갔다. 히스기야 터널의 끝에 실로암 못이 있다. 성의 남쪽 성밖 시온산으로 이동하여 마리아 영명교회, 베네딕트 교회를 둘러보고 다윗왕이 하프하는 동상도 보았다. 완전한 모습이면 우상이 될 수 있으므로 다윗왕의 코가 없었다.십자군 시대에 교회로 되었었던 마가의 다락방(최후의 만찬, 오순절 성령의 역사)을 들렀다. 이슬람교가 사원으로 점령하여 미후랍(메카를 표현) 이라고 한다. 아라베스크(창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한 것), 펠리칸 새(자식에게 살과 피를 주는 새) 조각도 보았다. 하누카 촛대는 성전을 정화하는대 하루 정도밖에 타지 못함에도 위기의 순간에 8일간 타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했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이 울자 통곡했던 장소도 들렀고, 가야바의 집에서는 예수님께서 지하에서 당하신 끔찍한 고문의 현장을 보면서 시편 88편을 들었다. 가이드가 읽어주었다. 고통의 현장에서 울컥했다. 지하에서 나와 베드로가 여종에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의 조각을 보았고, 힌놈을 골짜기를 바라보면서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베들레헴은 빵집이라는 말이며, 예수님 탄생 기념교회의 겸손을 문을 통과하여 예수님 탄생의 자리도 만져 보았다. 목자들의 들판교회(오후 4시가 넘어 입장 불가)를 둘러보고 보아스의 들판(지금은 같은 이름으로 상점이 들어서 있다)을 보고 오늘 순례의 길을 마쳤다. 숙소로 들어와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31일 순례 7일차(이스라엘)

오늘도 일찍 식사를 하고 78분에 순례의 길을 출발했다. 이스라엘은 서쪽을 해안지역, 가운데를 산악지역, 동쪽은 계곡지역의 세 지역으로 나눈다.

해안지역은 가자지역이라고도 하며, 악고평야, 샤론평야, 블레셋평야로 나뉘며, 산악지역은 갈릴리(북부,남부)산지, 사마리아산지, 베냐민산지, 유다산지, 헤브론산지로 나뉘고, 계곡지역은 골짜기로 사해바다와 갈릴리 호수(요단골짜기), 아라바광야가 있다. 큰 지명을 중심으로 나눈 것이다.

맛사다 요새로 이동 중 씨레벨릐 사막지역을 보고 사막에 샘이넘쳐 흐르리라를 찬송했다. 가이드분이 처음 이스라엘을 올 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불기둥, 구름기둥을 보고도 불평할까? 하며 이들의 신앙을 우습게 봤는데, 사막에 살아보니 불평이 절로 나와 자신이 회개했다고 하셨다.

지금은 수로를 끌어 올려 물을 공급하여 수목이 잘 자란다. 사막의 흙은 물만 주면 뭐든 잘 자라는 좋은 흙이란다.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것은 한국의 울창한 숲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뭐든 잘 자랄 수 있으며, 작은 나무에도 새가 깃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단다.

사해를 염해, 동해, 아라바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우리는 사해지역의 요르단 국경에 있는 맛사다 요새에 도착했다. 로마군에 대항하여 967명의 저항군이 3년을 버틴 곳으로 물 저장고가 11개이며, 곳곳에 수로가 있었다. 곡식,과일,기름,향신료 보관 창고도 있다. 맛사다 요새를 만든 사람은 헤롯이며 왕궁까지 만들었으나, 정작 자신은 여기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목욕탕도 만들어 냉탕,온탕,열탕까지 구분했다. 결국 로마군이 나무를 세우고 돌을 쌓는 토성으로 길을 만들어 성을 공략했다 나무는 불화살을 대비해 물을 먹였으며, 토성을 쌓는 것은 이스라엘 노예를 시킴으로써 성 안에서는 토성을 쌓아오는 동족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성 안 사람들은 제비뽑아 10명의 이름을 남기고 모두 죽음을 택함으로써 노예의 삶을 거부했다. 다음으로 사해 해변을 찾았다. 정말 몸이 둥둥 뜬다. 머드팩도 하고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였다. 점심은 인근의 선교사님 가정에서 만든 한식 도시락을 먹었고, 선물코너에서 비누를 구입했다.

쿰란 지역으로 이동하여 쿰란공동체가 형성된 영상을 보았다. 요한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2년가량 공동체의 일원으로 있다가 떠나갔으나 세례요한은 아니라고 한다. 쿰란공동체의 업적은 사해사본을 11개의 동굴에 나누어 보관한 것이다. 현세에 양치기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동굴에 돌을 던졌다가 항아리 깨지는 소리를 들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쿰란공동체는 하루 두 번씩 몸을 씻는 정결의 방, 말씀을 필사하는 필사의 방과 수로를 이용한 물 저장고를 만들었는데 바닥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다. 시멘트가 안 발라진 것은 곡식저장고이다. 쿰란공동체 하면 제4동굴이 유명한데 여기서 문서가 14,000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요단강 동편 베다니에 있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받으시던 곳을 들렀다. 서 베다니의 경계이다. 다른팀에서 물속에 들어가는 세례를 행하다가 기류에 휩쓸려 두명이 서편베다니에서 떠올라 복잡한 문제가 얽혔으나 다음날 무사히 팀으로 돌아왔다고 가이드가 말해 주었다. 시험산 전망대를 보고, 쓴 물의 쓴 맛을 없앤 엘리사의 샘도 보았으며, 그 샘의 수원지도 보았다.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의 길 여정에 감사함이 넘쳤다.

숙소로 와서 다시 잠을 청한다.

   

21일 순례 8일차(이스라엘)

오늘은 순례의 길 마지막 날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가이샤리아 빌립보에 들렀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장소이다.

가이샤리아는 카이샤르(황제)를 말하며 헤롯 빌립이 통치하여 가이샤리아 빌립보라고 한다. 반인반신인 신의 신전, 아우구스투스 신전, 제우스 신전, 제물를 바진 신전 등이 있어 우상들이 가득했던 곳에서 예수님께서 물으셨던 것이다.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이 질문에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정말 천국의 열쇄를 받을만 하다. 그래서 열쇄우물도 있다.

이스라엘 왕국 분열 후 단 지파는 10지파가 성전을 열망하는 마음을 잡기 위하여 단과 벧엘에 제단을 쌓았다. 우리는 단 지역의 제단을 둘러본다.

정말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제단과 단 지파 후예들이 거주하던 곳을 보면서 인위적으로 성전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음을 느꼈다.

중동지역의 소 숭배 사상은 이집트에서 시작한 것으로 힛타이트 지역(헷 족속)에서 난폭한 소가 천둥과 번개를 주관하는 신으로 섬기게 되고 결국 황금송아지 우상이 만들어 진다. 유적지의 성문 옆에 판결소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왕이 그 곳에서 백성들을 판결했다.

팔복교회를 방문했다. 세 개의 바위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앉으셨던 바위,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의 바위,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질문할 때 앉으셨던 바위 이다. 지금의 교회는 1930년대에 지어진 교회이다. 창문에는 팔복을 그렸으며, 바닥에는 믿음, 소망, 사랑을 표시했다.

오병이어 교회는 타브가 지역에 있다(타브가 : 물이 많이 흘러나는 곳)

베드로수위권교회는 1930년대 지어진 아담한 교회이며, 1990년대에 만들어진 하트모양의 바위가 있다.(멘사 크리스티 : 그리스도의 식탁)

가버나움 교회는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친 곳이며, 중풍병자를 고친 장소이다. 훗타르(동네), 나훔(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이방인의 도시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왕래 한다. 회당이 있으며, 남자와 여자를 구분한다. 연자맷돌도 보았다. 점심식사 후에 갈릴리 선착장으로 가서 배타고 갈릴리 호수를 거닐었다.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를 불렀으며, 갈릴리 호수에 관한 찬양과 고전 복음송 메들리도 했다. 먹이를 던지니 많은 갈메기들이 모여들었다.

가버나움의 아르멜산은 제2의 맛사다로 동굴입구에는 불을 때고, 동굴 뒤는 절벽으로 꼼짝없이 죽게 만들었다. 가나마을 혼인잔치교회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던 곳이다. 나사렛으로 이동하여 수태고지교회를 들럿다. 예수님 태어나신 곳을 축복한 곳이며, 백합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마리아를 의미한다. 수태고지 정문에는 예수님의 일생을 담은 주조가 장식되어 있고 왼쪽은 구약의 선지자, 오른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문에는 창세의 굵직 굵직한 사건의 부조가 있고, 작은 옛날 마을의 흔적도 있다.

명예살인이 있었다. 아버지가 결혼전에 아이를 가진 딸을 살해한 사건으로 총을 12발을 쏘고 6발이 딸에게 관통했으며, 아버지는 나는 명예를 회복했다라고 했단다. 현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마리아의 임신은 당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라고 볼 수 밖에... 요셉교회까지 보고 우리는 공항으로 가면서 나머지는 설명으로 들었다

므깃도 지역에는 이즈르엘평원(골짜기)과 광활한 농경지가 있다.

엔돌지역의 수넴마을은 나인성 과부가 살던 곳이며 엘리사가 활동한 지역중 하나이다. 갈멜산은 27km나 되는 산지지역.

이스라엘을 통과하는 도로와 도단, 다아낫, 용납길의 세 도로가 연결되는 지역이 므깃도이다.(가장 많은 도로 보유) 그래서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도 므깃도에서 일어날 것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고 한다.

 

21일 밤 오는길.....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하여, 우리는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 정말 성지를 현장에서 접해보는 마음이야 감격스럽지만 대부분이 회교의 성지가 되어 있다는 것에 안타깝고 기도할 제목이면서도, 우리 나라도 믿음의 식구들이 느슨해지면 촛대를 옮기실지 누가 알리요.

지금의 평안함이 감사한 만큼, 서머나 교회같이 굳건히 지켜야 할 믿음이다.

10일간의 순례에 함께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저녁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오후 7시경, 모든 긴장이 풀려 스르르 잠이 든다.




 이승학

2018-02-05 08:23

큰 은혜의 시간이 되셨군요 감사의 글이 한권의 감사의 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감사가 됩니다 최집사님 성지순례에 감사의 글에 감사가 됩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글 쓰는것도 고생많으셨습니다 샬롬 마라나타

 이충우

2018-02-07 13:32

성지순례에 간것처럼 실감나게 잘봤습니다.
정리를 잘하신다는 얘기는 들어 알았지만 너무 상세하게 써주셔서
안가본 사람들도 같은 은혜를 느꼈을거라 생각되네요
이번 8월에 순례가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선종엽

2018-02-07 20:14

은혜가운데 다녀오셨다는 성도님들의 환희에 저도 꼭 가보고 싶어요..올 8월엔 실행되었으면 좋겠고 집사님의 적나라한 알림에 정말 감사드립니다..목사님의 설교에서도 제가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여서 가만히 앉아서 읽고 듣고 은혜 받습니다요..

 우성원

2018-02-07 22:02

성지순례기간을 날짜별로 정리해놓으신 솜씨가 역시 최집사님이다...싶습니다.
순례기간내내 가장 열정을 보이시더니 정말 감동입니다.
다가오는 8월 순례에도 많은 분들이 은혜에 동참했으면 좋겠네요~^^

 김호성

2018-02-10 14:03

최집사님은 참 대단하세요. 속기사도 가능할 것 같구요.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살롬 마라나타!!!

 최영준

2018-02-11 16:37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감사하고,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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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1월 성지순례
  • 2018-02-04
  •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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