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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 힘들어도 감사해야 할 이유
약 5년 전,
청년부의 몇몇 무리들에게
‘한약’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이 한약의 효능은
다음과 같았다.
‘다이어트’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뚱뚱했던 나는
소위 말하는
약빨(?)을 좀 받고 싶어서
한약재로 유명한 서울의 한 지역으로
혈혈단신 비장한 각오를 품고 상경했다.
맛은 정말 끔찍했으나
효능은 확실했다!
내가 분명 듣기로는
이 약이 식욕을 억제해 준다던데
먹어보니 식욕 억제가 아니라
나를 좀비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숟가락 들 힘도 없게 만들어서
살을 빼주는 약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나는
거금을 지불한 후였다.
그렇다. 후회해도 늦었다.
당시 나는 매주
고신대가 있는 부산에서
사역지가 있는 평택으로
기차를 약 ‘네 시간 반’가량 탔는데
당시 약에 취했을(?) 때
정말 창문에 머리만 처박고
숨만 쉬고 있었다.
진짜 숨만 붙어있는
시체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감사가 몰려왔다.
‘힘들다’는 말
참 많이도 했었는데
힘든 상황마저도
감사의 제목이었음을
정작 좀비가 되어보니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힘들다 라는 말을
여러 각도에서 돌려보면
‘그래도 소비될 힘이 내 안에
조금은, 아니 많이 남아있어’
이 뜻 아니었던가?
오늘 있는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면서
어제 갑자기 5년 전 그 에피소드가 떠올랐을 때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징한 녀석 코로나.
이 녀석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
특별히 자영업을 하시는 우리 성도님들
얼마나 많이 힘드실까?
그러나.
‘힘듦’도 감사가 될 때,
내 안에 얼마 남지 않은 그 힘이라도
주님을 향한 ‘앙망’으로 ‘소비’가 될 때
결국 주께서
독수리가 날개쳐 올라가는
새 힘을 허락하시지 않을까?
아니 이미 하신 줄로 나는 믿는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1. 주님 아직 제 안에 힘이 남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2. 주님, 더 큰, 완벽한, 새 힘 허락하신 줄 믿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