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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선명한 '휘슬'이 내 심령에 울리기를
이사하면서 구매했던 티비가
한 달 전쯤에 왔었다.
직구로 구매해서 한 달 조금 넘게 걸렸는데
하루가 일 년 같다는 말을 그 기다리는 기간 동안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해피콜이 오고 설치 기사가 들어오는 순간
가슴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드디어 리모컨을
잡고 있던 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때
그 채널의 변화가 주는 신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고 며칠 뒤
티비의 패널에서 조그마한 껍데기가 있기에
조심스레 떼어냈는데 아뿔싸!
그것은 포장 비닐이 아니라 패널을 고정하는
스펀지가 조금 삐져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남들이 봤을 때 찾아보기도 힘든
그 미세한 스펀지의 상처가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원래부터 물건을 병적(?)으로 아껴왔고
게다가 독립 후 처음으로 구매한 티비였기에.
아무튼
그 상처를 머금고 축구 게임을 하는데
게임 도중 참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뛰면서
때로는 태클에, 헤딩 경합을 하다가
심지어 뼈가 부서지는 부상을 당하면서도
전심전력 공을 향해 질주하던 선수들이
심판이 휘슬을 세 번 불자마자
그 어느 누구도 공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걸 바라보면서 문득 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 공을 따라가야 할 의미가 사라졌구나.’
‘바울’에게 있어서 이 ‘휘슬’은
‘예수’의 ‘음성’이 아니었을까?
마치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래서 전력 질주를 했었던 그 바울의 귓가에 강력하게 나타난 예수님의 ‘음성’처럼
‘성도’에게 있어서 이 ‘휘슬’은
‘성경’의 ‘복음’이 아니었을까?
마치
세상의 학력, 재력, ‘명예’라는 공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다가
그 ‘복음’ 앞에서 멈춰 서는, 아니 멈출 수밖에 없는,
그런 의미들의 상실을 기쁘게 자각하는 것처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19-20)
오늘 하나님의 ‘휘슬’이 오늘
내 귀에 선명하게 울리기를.
그래서
‘가치’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강력하게 일어나기를!